[회원기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생기행 후기 – 2편(네덜란드편) : 성매매 합법화 국가에 임대료 상한선이 있다고?! / 김단영 회원

2025-06-08 88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생기행 후기 – 2편(네덜란드편)]

성매매 합법화 국가에 임대료 상한선이 있다고?!

– 김단영 회원

[목차]

1. 네덜란드를 아시나요?

2. 우당탕탕 민생기행단까지

3. 작지만 큰 나라, 네덜란드

4. 100년 역사 네덜란드 사회주택

5. 호이(Hoi) 네덜란드!

6. 우리 집보다 좋아 보인다?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7. 사회주택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8. 일상으로 돌아가며

9.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주택 태동기

 

1. 네덜란드를 아시나요?

“네덜란드”하면 어떤 생각이나 심상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운하가 흐르고 풍차가 돌아가며 튤립이 만연히 피어있는 낭만적인 나라? 아니면 대마초와 성매매가 합법화된 무분별한 자유의 나라? 더치(Dutch) 페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유럽 하면 딱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메이저 국가들에 비하면 뭔가 밋밋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 『먼나라 이웃나라:네덜란드편』을 다른 편에 비해 가장 재미없게 읽었던 기억밖에 없었습니다(네덜란드편을 특히 애정하신 독자분이 계신다면 죄송합니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거리에 성매매 여성들의 권익을 상징하는 동상이 당당히 서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나라입니다(심지어 성당 근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임대인에 대하여 엄격한 임대료 상한선 규제가 병존하고 있는, 얼핏 보면 양립 불가능한 이념이 동일선상에 함께 하는 듯한 신기한 나라입니다(우리나라에서 임대료 상한선 논의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달리 생각해보면, 그만큼 유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사회 저변에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주택의 ‘사’자도 모르는 제가 무려 주거복지를 탐방한답시고 네덜란드까지 날아갈 거라고는, 여의도 집회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2. 우당탕탕 민생기행단까지

민생경제위원회(이하 “민생위”)가 주최한 민생기행을 올해 2월 다녀왔습니다. 저는 2024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여의도 집회에 나갔다가 민생위에 가입하였고, 이후 유럽 민생기행 참여를 권유받아 멋모르고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민생위는 제가 아직 변호사가 되기 전인 2020년 2월에도 민생기행을 떠났다는데, 동유럽의 독일, 오스트리아 2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민생기행에는 지난 민생기행 단원이셨던 오세범, 김태근, 박현근 변호사님들께서 재차 참석해주셔서 변치 않는 열정을 자랑하셨습니다. 이번 민생기행은 서유럽의 주거복지, 금융복지 모델 등을 학습하고, 대한민국 민생경제 발전을 위하여 도입할 수 있는 시사점 발견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약 10명의 기행단은 김남주 단장님의 영도(?) 아래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로 진격하였습니다. 그중 네덜란드는 이번 기행의 마지막 목적지였습니다.

저희 기행단은 무작정 유럽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김남주 변호사님의 기획 아래 각자가 최고의 민생기행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김남주 변호사님은 단원들의 사전지식 습득을 위하여 강연자를 섭외하여 기행을 출발하기 전 공부 모임을 4회 꾸려나갔습니다. 또한 소현민, 박소영, 이영규 변호사님은 방문할 유럽의 주요기관 컨택을 하였으며, 네덜란드 현지의 코디네이터님까지 섭외함으로써 알찬 기행을 보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한편, 이혁 변호사님은 한국의 전통 공예품들을, 김태근 변호사님은 한강 작가님의 불어판 서적을 준비하여 방문기관에 선물함으로써, 민간외교단으로서 저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최석군 변호사님은 민생기행 사진을 통한 기록을, 이혁 변호사님은 촬영을 통한 영상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저는 숙박, 교통편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번 기행단이 더욱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주택 전문가로서 관련 경험이 풍부하신 최경호 소장님께서 동행하였다는 점입니다. 풍부한 식견과 소통 능력에 비해 너무나 겸손하신 소장님의 가르침은 사회주택 지식 제로 베이스에 빛나는 제게는 그저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3. 작지만 큰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2023년 기준 1,800만 명에 못 미치고,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칩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 무슨 볼일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022년 기준 전체 주택의 약 34%가 사회주택으로 OECD 1등을 먹은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그래봤자 조그만 나라니까 사회주택 비율도 높을 수밖에 없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절대량으로 봐도 인구 서너 배가 넘는 프랑스,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이며, 2023년 기준 인구 약 90만 명의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약 19만 호가 주택협회 소유 주택이며 그중 약 17만 호가 사회주택입니다. 이는 인구 1,000만 도시인 서울의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2022년 기준 공급한 공공주택 수 13만 5천 호보다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회주택이 뭔데?’라고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겁니다. 사회주택은 사람들이 부담가능한 주거비를 내며 오랜 기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공공도, 민간도 아닌 영역에서 공급하는 주택을 의미합니다1). 쉽게 말하면, 저소득층이 저렴한 가격에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주거문제가 심각합니다. 일반적인 근로소득으로는 서울에 집을 구하기 어렵고, 집값은 나날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주거안정을 위하여 빚을 떠안으면서까지 무리하게 집을 구매하게 되고, 이는 가계소비 위축, 나아가 결혼과 출산율 저하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 나라에 따라서는 제3섹터 외에 공공까지 포함한 ‘비시장 주택’을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쓰입니다.

 

만약, 시중 임대료의 50%, 혹은 그보다도 낮은 가격에 공급되면서도 가성비가 좋은 퀄리티의 주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다수의 시민에게 주어지고, 이러한 주택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임대받아 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본다면 어떨까요? 인생 계획에서 주거문제로 인한 부담이 많이 줄어들 텐데, 그것만으로도 홀가분해지지 않나요?

네덜란드에서 사회주택의 공급은 대체로 사회적, 공적 금융의 지원을 받은 지방정부가 택지를 개발하고, 주택협회에 공공토지의 경우 40년 이상의 지상권을 설정해주며, 역시 사회적 금융의 지원을 받은 주택협회가 주택을 개발하여 임차인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때 연간 5만 유로(약 8천만 원) 아래 소득자가 임차인으로 입주 가능하며, 사실상 무제한의 임대기간을 보장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모든 주택용 부동산을 점수화시켜서, 일정 점수 이하의 모든 주택에 임대료 상한선을 걸어놓는 주택점수제를 운영합니다. 한 마디로, 고오급 주택의 집주인들은 임차인에게 고가의 임대료를 자유롭게 제시하여 계약을 체결하면 되는 반면에2), 적당한 수준의 주택 집주인들은 임차인들에게 일정액을 초과하는 월 임대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주택점수는 세세한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데, 예를 들어 집이 넓을수록, 거실 바닥 마감재가 고급일수록, 부엌 싱크대 길이가 더 길수록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즉, 주택점수에 비례하는 수준의 임대료 상한선이 정해집니다. 네덜란드 사회주택 월 임대료의 최대 상한선은 2024년 기준 879.66유로(한화 약 137만 원)입니다. 더구나, 주택협회 전국연합회에 따르면 이러한 상한선의 약 72% 수준의 월 임대료를 시장에서 유지 중이라 합니다.

2) 여기도 임대료 상한선은 있긴 하지만, 권고사항일 따름입니다.

 

4. 100년 역사 네덜란드 사회주택

네덜란드 사회주택의 역사는 100년 이상 오래되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공장이 생기며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위한 영리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으나, 5인 이상 가구가 한 방에 지내야 하고, 집에 딸린 정원을 방으로 개조한 곳에서 세를 살아야 할 정도로 사정이 열악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본가의 이윤추구형 주택에 맞서, 풀뿌리에서 건축조합이 생겨났습니다. 중도좌파는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중도우파는 기독교적 박애주의 정신에 따른 독지가들을 배경으로 사회주택을 지어 노동자에게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 전체 주택의 약 23%가 파괴됨에 따라(말이 23%지, 동네 사람 1/4의 잘 곳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겠죠), 정부의 최우선과제는 주택공급이 되었고, 주거부를 따로 설립하고 관리함에 따라 그때부터 사회주택이 급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시스템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은 주택협회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주택협회는 그 명칭과는 달리 연합체라기보다는 각각 독자적 조직으로서 사회적기업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주택협회들이 사회주택을 건설, 유지보수, 리모델링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택협회 약 300개가 모여 AEDES(에이데스; 주택협회 전국연합회)라는 전국조직을 결성하여 사회주택 240만여 호를 운영 중이고, 중앙정부인 주거부와 협의를 진행합니다3).

3) 네덜란드는 지방분권적 성격인 강한 나라인바, 주택협회들은 권역별로 모여 만든 연맹체를 중심으로 지방정부와 공급계획을 협의합니다.

 

5. 호이(Hoi)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의 일정은 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전날 프랑스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였고, 다음 날인 2025. 2. 24. 아침부터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기행단은 DELFT(;델프트) 공과대학교 건축학부에서 코디네이터 강빛나래 선생님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강빛나래 선생님은 저희 기행단에게 유창한 통역을 해 주셨음은 물론, 네덜란드 방문기관 섭외, 교통편 검색까지 전반적으로 큰 도움을 주신 선물 같은 분이었습니다. 먼저 강빛나래 선생님께서 암스테르담의 토지정책과 도시계획에 대하여 강의해주셨으며, 이어서 최경호 소장님께서 네덜란드 사회주택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진행하여 주셨습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약 1/3이 해수면보다 낮아 치밀한 도시계획이 필수적이고 지역민이 협력하여 습지를 개간하며 발전해온 전통이 있기에, 도시계획에 있어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나라이며, ‘계획가의 천국’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저희 코디네이터 선생님도 델프트 공대에서 토지개발 관련 박사과정을 밟고 계셨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건축학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있을 일정에서 보게 될 네덜란드 사회주택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지 절로 기대되었습니다.

오후에 방문한 기관은 Huurcommissie(;휘르코미시) 헤이그 지부였습니다. 직역하면 임대위원회인데, ‘임대차갈등조정위원회’로 이해하시면 편합니다. 휘르코미시는 주택임대차법에 근거하여 민사판결에 준하는 결정을 내리는 준사법기구로서, 네덜란드 내무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나, 정책과 조정 결정에 있어서는 완전한 독립을 보장받으며, 59개 지부가 네덜란드 전역에 위치합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조정 외에도 주택임대 매뉴얼을 제작하여 세입자에게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분쟁 해결의 기준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휘르코미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세입자가 거주 중인 주택점수, 이에 따른 임대료 상한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세입자는 혹여 집주인이 법에 따른 임대료 상한을 초과하는 부당한 임대료를 부과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휘르코미시 방문이 끝난 후, 저희는 이준 열사 박물관에 방문하였습니다. 이준 열사를 비롯한 헤이그 특사 3인방은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으나, 일제의 방해 등으로 회의장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그 와중에 열사는 지병이 도지는 바람에 이역만리 타지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박물관은 특사 3인이 머물렀고 열사가 사망할 당시 머물렀던 숙소를 개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나이 드신 박물관 관장님은 참으로 열성적인 분이셔서, 이준 열사의 삶에 대하여 한참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행단이 변호사 모임인 점을 들으시고는, 이대로 지나칠 수 없다며 이준 열사의 죽음과 이에 대한 보도기사에 관한 설명 2차전을 시작하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박물관에 걸린 열사의 유훈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의 그 날 비장한 마음으로 헤이그에 방문했을 열사들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형편이 좋은지도 비교되었고, 새삼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 우리 집보다 좋아 보인다?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네덜란드 2일차인 2025. 2. 25. 오전에는 Het Schip(;헷 스힙) 박물관에 방문하여 네덜란드 사회주택 역사에 관하여 도슨트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Het Schip은 직역하면 “배(The ship)”라는 뜻이며, 건물이 배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헷 스힙은 1919년 철도 노동자 등을 위한 사회주택으로 지어졌습니다. 헷 스힙의 건축가는 “노동자는 너무 오랫동안 아름다움 없이 살아왔기에, 그들에게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헷 스힙을 설계하였습니다. 1층에는 노동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우체국까지 설치하였습니다. 노동자가 사는 건물단지에 편의시설까지 부속되었다니!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지 않았을까요? 오늘날로 치면, 군대 생활관에 가족들과 문자, 전화를 할 수 있는 핸드폰이 반입된 수준의 파격이 아니었을까요4)? 현재까지도 일부 건물이 주택으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건축한 헷 스힙을 보면서, 돈 없는 사람은 비좁고 낙후된 시설에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새삼 달리 보였습니다.

4)물론 현재 군대는 개별적으로 휴대폰 반입이 가능하지만요. 제가 병장달 때, 생활관별로 휴대폰이 각 1대씩 처음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주택협회인 Ymere(;이메르)를 방문하였습니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주택협회는 사회주택을 건설, 공급하고 유지보수, 리모델링을 하는 사회주택 공급업자로 사회주택 시스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메르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약 8만 호의 사회주택을 공급하는바, 최근 이슈는 2050년까지 모든 주택에 탄소중립 난방시설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메르와 임차인 간의 관계성이었습니다. 이메르의 직원들은 단순히 좋은 집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임차인 사이에 유대감을 강화하고 살기 좋은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입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주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동네를 돌면서, 집마다 딸린 정원이 관리 안 되고 방치되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방문도 한답니다. 우리나라면 임대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 쓸 때나 얼굴을 한 번 볼까 말까 하지, 더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음이 일반적입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임차인에게서 임대료만 따박따박 입금받으면 볼일 끝난 것이고, 임차인도 집주인한테 연락받을 이슈라고는 임대료 미납이나 아랫집 민원이 있을 때 정도라 썩 달갑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먼저 임차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공동체 형성에 발 벗고 나선다니, 익숙지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얼마 전 민생위에서 월례회 명목으로 한국의 사회주택 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첫째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주택 공동체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둘째로는 이러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운영 주체 역할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성공적인 운영방식이 일률적으로 다수의 주택에서 실현되기 위하여는 개인의 역량과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집단을 통한 전문성 있는 운영이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다양한 주택공급자들이 각 기관별로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주택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면, 시민들은 자신의 가치관, 생활관에 더 부합하는 공동체를 선택해서 입주함으로써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7. 사회주택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네덜란드 방문 및 민생기행 공식 일정의 마지막 날인 2025. 2. 26.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 강행군 마지막 날인 만큼 조금 지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배 변호사님들은 이 기회, 하루하루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습니다. 예정된 미팅시간을 초과해도 코디네이터 강빛나래 선생님이 제지하지 않는 한, 방문기관에 질문을 멈추지 않으셨고, 그 모습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오전에는 Woonbond(;분본트)에 방문하였습니다. 직역하면 “거주자 협회”, 그 명칭대로 세입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세입자 교육, 법률지원, 정책제안, 입법로비 등을 수행하며, 국제 세입자 연합(IUT)의 일원으로서 국제 연대 활동도 진행합니다. 분본트에는 약 170만 가구가 가입하여 있으며, 개인회원 11,000명, 조직회원 400개 이상을 회원으로 두고 있고, 50명의 직원이 활동 중입니다. 분본트는 “주거는 기본적 인권이며, 이윤을 우선시하는 시장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활동하는바, 임대인의 착취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네덜란드는 주택단지가 100채 이하여서 주민위원회가 별도로 꾸려지기 어려운 경우에는 정부 차원에서 분본트 같은 세입자 협회 가입을 권유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 대등한 협상력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을 당연스레 여기는 컨센서스가 있는 사회 공동체는 우리나라에서 언제쯤 이뤄질까 싶었습니다.

오후에는 WSW와 미팅을 진행하였습니다. 네덜란드 성인 남녀 평균 키는 183cm, 170cm로, 유럽 1위라고 하는데, 직원분들 모두 여남 불문 정말 커서 깜짝 놀랐답니다. WSW는 직역하면 ‘사회주택건설 보증기금’입니다. WSW는 주택협회가 공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사회주택 건설, 유지보수를 위한 대출받을 때 보증을 서주며, 이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매년 진행합니다. 현재 WSW는 950억 유로(약 148조 원)의 대출을 지급보증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WSW 덕분에 주택협회는 안정적인 금융지원을 받아 사회주택을 공급해나갈 수 있습니다. 지급보증의 경우, 1차적으로 주택협회가 보유 중인 자산을 기초로 보증하고, 2차적으로 WSW가 보증하며, 최종적인 3차 보증기관은 다름 아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정부로, 각기 절반씩 부담한다고 합니다. WSW 직원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전형적인 금융권 인사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언어는 사회주택의 시스템의 중요한 한 축을 맡은 스스로 역할에 대하여 확신과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침내 민생기행이 끝났습니다! WSW 일정을 마친 후 저녁시간, 저를 포함한 민생기행단 YB는 근처 하이네켄 박물관에 들러 생맥주도 시원하게 들이키고, 하이네켄 후드티도 구매했으며(붉은 별 로고가 영롱하더군요), 자유일정을 만끽하였습니다. 이후 기행단은 호텔 바에 모여 각자의 소회를 밝히며 소소한 여행의 마무리를 함께 마쳤습니다.

 

8. 일상으로 돌아가며

민생기행은 저에게 있어 단순 관광 목적이 아니라 배움을 목적으로 해외를 다녀오는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이었고, 그 나라의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민생기행단원들의 식견과 방문기관에서의 날카로운 질문이 없었다면 제 경험은 반쪽짜리가 되었을 겁니다. 무엇하나 처음 들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분들이 어깨에 저를 올려주신 덕에 역량을 넘어서는 경험치를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을 돌아다니며 느낀 점은, 첫째로 시민들이 ‘내가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서 사회에 나올 시기가 되었는데,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의 탓이야.’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능력 없는 자, 노력할 줄 모르는 자, 사회불만분자(반국가세력?) 취급받지 않을까요? 둘째로 ‘항산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맹자님 말씀처럼, 인생에서 주거문제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니, 좀 더 이웃에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쓸 여력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이루지 못할 바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최경호 소장님께서도 저서 <<어쩌면, 사회주택>>에서 언급하셨는데,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두레, 향약 같이 서로 돕고 연대하는 공동체 문화가 엄연히 존재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팍팍한 경제사정에서 조금만 더 벗어날 수 있다면, 아름다운 공동체는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5).

5)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현재를 즐기는 YOLO족, MZ세대의 유행을 마냥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미래에 대한 체념과 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분명 ‘여유’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여유로부터 ‘타인을 향한 시선’이 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유독 특이했던 경험은, 지나가는 와중에 다섯 번 정도 네덜란드인들이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던 일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 하멜의 후손들이 멀리 대한민국까지 무엇을 배우러 왔는지 궁금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고, 어련히 K-콘텐츠의 영향이 아닐까 지레짐작하였습니다.

 

9. 이제는 대한민국 사회주택 태동기

민생기행을 다녀오고 얼마 후, 사회주택에 고무된 저는 그 이야기를 친구 부부에게 했는데, 즉각 나온 반응이 “그러면 영끌해서 장만한 우리 집 값 떨어지니까 무조건 반대야!”라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라고 사회주택에 대한 낙인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들은 당연히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것보다는 자가 소유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사회주택의 품질이 좋고, 소셜 믹스도 잘 되어 있어서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집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외관만 보았을 뿐이지만 아름답게 설계한 건물이 있어서 저 중에도 사회주택이 있냐고 묻자, 분본트의 직원이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제 친구들이 덮어놓고 사회주택을 기피시설로 인식한 것은 주택의 품질 이슈 외에도, 실제로 서울 내에서 많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임대시장의 30%가 넘는 수준의 사회주택이 공급됨에 따라, 시민들이 일상생활 중에 마주칠 일이 더 많아지고, 그 존재에 익숙해지면 인식도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요?

제 상상이지만, 네덜란드에서 처음 사회주택이 건설되어서 저소득층 노동자가 입주할 때도 “그렇게 몇 안 되는 사람들을 구제해봤자, 나머지 수많은 열악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면 소수에게 특혜를 주는 정도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몇 채의 사회주택이 씨앗이 되어 점점 늘어났고, 어느새 주택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여 이제 상당수 시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6).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소수를 위한 특혜라고 부르기 힘들겠죠. 주거권이 보편적 권리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6) 이것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수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고, 여러분은 대한민국 사회주택 역사의 태동기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사회주택은 대한민국 수도권의 고질적인 주거 문제를 풀어낼 해법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사회주택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지가 있다면, 훗날 우리는 청년, 신혼부부, 노동자, 예술가들이 사회주택을 옵션처럼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세상, 더 친절한 이웃들과 부대끼는 세상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 주신 민생기행 단원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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