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변 한반도평화위원회 평화교류회 후기]
아름다운, 그러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 곳, 미야코지마
– 문지혜 회원
시작은 함께 민변활동을 하고 있던 남편과의 가벼운 대화였습니다. “미야코지마에 군사기지 문제등이 있나봐. 한반도 평화위원회에서 방문을 한다는데, 우리도 함께 하는 거 어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뇌가 청순해지고 있는 저는 바로 “그러지 뭐”하고 답을 하였고, 그렇게 민변 한반도평화위원회와의 평화교류회 인생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민변 인천지부의 구성원으로서, 인천지부의 활발한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본부의 활동이나 위원회의 활동 등에는 무지하였고, 이번 평화교류회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어떤 구성원이 가는지조차 모른채로 이번 평화교류외의 첫 참가를 결정하였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인천지방변호사회에서는 일본 사이타마변호사회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어 일본변호사회와의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회의 교류회라고 하니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참가였는데, 이번 평화교류회는 과거 참가한 교류회들과는 출발 전부터 다른 분위기였습니다(심지어 일본 오키나와변호사회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백충 변호사님의 경우 사이타마 변호사회와의 활동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그 때 만났던 변호사님은 백충 변호사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음을 이번 교류회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 참가하셨던 한반도평화위원회 변호사님들께서 과거 추억을 소환하며 과거 있었던 교류회의 사진, 동영상을 단톡방에 공유해주셨는데, 그 사진과 동영상만으로도 오랜 기간동안 교류회를 통하여 함께 하였던 역사 뿐 아니라 그들사이의 끈끈한 정, 누적된 오래된 연대가 느껴졌습니다. 국가와 문화가 다른 일본과 한국의 변호사들이 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긴 시간동안 고민하고, 연대한다는 것이 출발 전부터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보다 더 먼 곳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코코넛크랩이 유명한 휴양지였습니다. 대만과 가까운 위치에 일본 영토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였지만, 단순한 저는 이번 여행전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섬까지 영토로 하고 있는 일본을 부러워하는 정도의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교류회를 통하여 섬전체를 기지화하고 있는 일본정부 및 미군의 주둔문제 등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미야코지마 섬에 도착한 날은 4. 3. 목요일이었습니다. 평일 재판을 빼고 미야코지마에 간다는 것이 방문을 하는 저에게도 큰 도전이었는데, 오키나와 변호사회의 오키나와 합동법률사무소의 가토 변호사님과 마츠모토 변호사님이 저희를 위하여 휴가를 내고 렌트카 준비하여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에 출발 전부터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미야코지마에 도착하여 오키나와에서 미야코지마로 비행기를 타고 오신 가토 변호사님과 마츠모토 변호사님과 민변 한반도평화위원회 변호사님과의 만남은 시작부터 저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로를 보면서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가족처럼 대하는 모습에 평화교류회의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를 위하여 숙소부터 일정까지 준비하여 주고, 일찍 도착하는 민변 한반도평화위원회 변호사들을 위하여 일찍 미야코지마에 와서 진심으로 저희를 환영해 주는 오키나와변호사님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저도 내년에 한국으로 오시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시작되는 하루였습니다.
평화교류회의 세미나는 토요일이었기에, 저희는 첫 날 목요일엔 가토 변호사님, 마츠모토 변호사님과 함께 미야코지마의 관광명소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가토 변호사님과 마츠모토 변호사님의 차를 타고 미야코지마에서 유명하다는 소금 박물관, 아름다운 해안가, 잘 보존되어 있는 늪 등을 관광하고, 미야코지마의 유명한 온천에 함께 들어가 수영을 하고 온천욕을 하며 함께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저녁에는 미야코지마 전통 노래 공연이 있는 오픈된 레스토랑에서 미야코지마 라멘, 오키나와 라멘 등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내내 가토 변호사님과 마츠모토 변호사님께서 민변 변호사님들의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봐주시고, 함께 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미야코지마의 식생, 문화 등에 대하여 상세히 답변해주셨고 여행 첫날부터 미야코지마의 문화 등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은 역사적인 윤석열 탄핵선고일이었습니다. 평화교류회 행사 도중 교류회 일본 변호사님들과 함께 탄핵선고를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번 평화교류회 행사는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탄핵선고를 듣고 함께 축하하면서, 둘째날이 지나갔습니다.

셋째 날은 이번 교류회의 목적이었던 세미나 날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서로 준비한 자료들을 나누고,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전날까지 서로 웃고 떠들며 농담을 주고 받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세미나 당일 각자 준비해온 ① 오키나와 내 미군기지 문제, ② 미야코지마 내 자위대 기지 문제, ③ 미야코지마 내 일반인의 손해배상 문제, ④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및 소송 현황, ⑤ 한반도평화위원회의 활동, ⑥ 한국에서의 계엄 선포 및 탄핵선고까지의 경과 등에 대하여 상세한 보고 및 토론을 하였습니다.
서로의 나라에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평화관련 문제에 대하여 공유하고, 진행상황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진지한 모습에서, 이 평화교류회가 오랜 기간동안 유지되고 있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우리 모두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이 미리 준비해주신 미야코지마 전통 음악 공연을 하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그 식당은 저희 일행들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은 일식집이었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함께 미야코지마 전통 음식을 먹으며 미야코지마 전통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미야코지마 음악을 연주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매우 유쾌한 분들이셨는데, 우리 모두에게 미야코지마 전통 악기를 나누어 주고 함께 이를 연주하면서(캐스터네츠 같은 악기로서 손가락으로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였습니다), 함께 미야코지마 전통 춤을 추며 후렴구 노래도 따라 불렀습니다.
태생이 모범생인 것인지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데, 열심히 연주하고 춤을 추는 저에게 공연을 하는 선생님께서 북을 치라는 임무를 주셔서, 저의 북소리 그 분의 미야코지마 전통 현악기소리에 맞추어 모든 변호사님들이 일어나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와 같은 춤을 추며 마음을 함께 하였습니다. 함께 춤을 추고, 미야코지마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면서 미야코지마 노래의 기원을 듣는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넷째날은 세미나에서 함께 공부를 하였던 보라지구 훈련장 방문으로 평화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민가 바로 근접한 곳에 탄약고, 사격훈련장 등이 건설되었고, 군사시설의 건설에 대하여 시민들에 대한 동의는커녕 일부 부지 등에 대하여는 법적 요건도 부족하여 현재도 오키나와 변호사회의 아카미네 변호사님께서 법적 투쟁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치요다 기지로서 기지 바로 앞에서 한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농부 나카자토님으로부터 투쟁의 역사를 들었고, 고향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자신의 일인 농사를 묵묵히 하고 계신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 본토에서도 한 참 떨어진 이곳에까지 위안부가 끌려왔고, 도망갈 곳 하나없는 섬인 이곳에서도 위안부들이 한많은 삶을 살아냈다는 점, 그러한 역사를 위안부의 옆에서 함께 살아가던 미야코지마의 사람들이 기억하여 역사로 만들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위안부비를 세웠다는 점, 위안부비를 위한 부지 역시 시민의 기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변호사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나 자신이 무지해져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또한 세상의 변화, 현재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상황 등에 점점 더 무뎌가는 저 자신에 대하여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번 평화교류회는 그런 저를 각성시키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조금만 둘러보면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많은 깨어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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